십대관련 뉴스들이 세상을 놀라게 합니다. 그 잔인성과 참혹성이 그렇고 그 대범함이 또한 그렇습니다. 순수하고 꿈 많은 십대로 생각하던 때가 얼마 되지 않은 듯한데...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나 바뀌고 말았습니다. 어른들의 편 가르기, 집단이기주의 등이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어 더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현실을 모르고 그저 꿈만 많이 있다고 순수한 것은 아닙니다. 현실인식도 있어야 하고 자신의 능력도 깨달아야 하지만 현실에 안주하고 꿈이 사라져 버린다면 세상은 더욱 삭막해지고 말 것입니다.
‘노 사이드(No Side) 정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네 편, 내 편이 아니라 함께 모두 같은 편이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들었던 ‘우분투(Ubuntu)’ 정신과도 관련이 깊습니다. 신앙 안에서 갈라짐과 분열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합니다. 오직 사탄을 춤추게 할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칸막이를 허물어 버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서로 받으라.” 한 하나님 아래에서 할례 문제로 다투는 것이 과연 옳은가? 라는 문제제기에서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할례로 인한 분열의 결과가 얼마나 주님을 아프게 하는가? 를 되묻습니다.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로 갑론을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치열하게 옳음을 위해 싸워야하고 다투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형제 됨을 해치고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옳음을 포기하고 옳지 않음과 타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때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라고 강조합니다. 각각 다름을 인정하고 영광에 집중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추종자가 되셨습니다. 이방인들도 그 긍휼하심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르지만 얼마든지 하나님 안에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은 서로 용납하게 합니다. 서로를 품게 합니다. 오늘날 전쟁의 위협이 높아지고 대립각이 첨예해질 때 오히려 우리는 하나였음을 기억하며 주님 안에서 저들을 받아들일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강국들의 편 가르기에 편승하지 말고 ‘서로 받으라’라는 주님의 음성을 고민할 때입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형제를 무시하고 위협할 때에도 이 말씀은 예외가 아니기에 하나님의 간섭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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