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과 저주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라합은 이 세상에서 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라합은 변변한 직업도 없었고 내세울만한 것도 없었던 나약하고 초라한 인생을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온 세상의 주인으로 고백할 때 저주 같았던 무기력한 그녀의 삶은 축복의 삶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여리고성이 완전히 멸망된 후 그녀는 유다 지파의 인품 좋은 사람의 아내가 되었습니다(마 1:5). 히브리서 11장 31절에서 라합을 이렇게 소개됩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저주가 우리와 멀리 있지 아니했던 것처럼, 사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지배를 받는 저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함 속에 태어난 우리이지만 죄의 지배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라합은 믿음으로 이 저주의 지배를 벗어나 하나님의 축복에 거하였습니다.
선인장은 자체 조직 내에 수분이 많으므로 사막의 초식 동물들에게 좋은 표적이
되는데 가시들은 이 짐승들이 함부로 공격할 수 없도록 돕는 자위용 무기가 됩니다. 또한 가시가 박힌 선인장의 몸체는 강렬한
태양 광선을 잘 견디게 해서 수분 증발을 억제하도록 돕습니다. 이처럼 축복은 때때로 저주로 위장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시각이 아닌 주님의 시각으로 축복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축복처럼 저주가 우리 주변에는
즐비하기 때문입니다. 26절의 비극적 저주는 히엘에게 일어났습니다. 그가
여리고의 터를 쌓을 때 맏아들을 잃었고, 그 성문을 새울 때에 막내아들을 잃었습니다(왕상 16:34).
축복과 저주의 기준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을 넘어 하나님의 기준으로 주시는 축복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아버지는 언제나 우리에게 선한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