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지하철을 막 타려고 하는데 저쪽에서 자꾸 표지판을 기웃거리는 외국인 여성이 보였습니다. 지하철이 도착했는지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기에 옆에서 기다리는데 그분이 눈에 자꾸 들어왔습니다. 풍채도 있고 연세도 들어보이는 분으로 어딘가를 찾는 듯했습니다. 외국에 나가 길을 헤맬 때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던 분들이 생각이 나서 용기 내어 그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핸드폰을 지도를 보면서 창덕궁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몇 번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를 몰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 보니 가는 길보다 더 걱정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걸어서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였습니다. 지하철역을 나가서 직진 10분, 거기서 우측으로 돌아 직진으로 15분, 모두 합쳐서 25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고 안내했더니 지도로 볼 때 보다 더 많이 걸어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택시를 타고 가야겠다고 서둘러 택시를 잡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마침 빈 차로 지나는 택시가 있어 기사분에게 목적지인 창덕궁을 말씀드리고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고 인사하고 헤어졌습니다. 외국인과 대화할 때 힘든 것은 외국어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말할 때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은 내가 틀리던 맞든 뭐라도 할 수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 당황함이 힘들게 합니다.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은데 알아듣지 못하면 어쩌나 마음은 늘 다가감의 걸림돌이 됩니다.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기도 중에 내가 필요한 것을 막 털어놓고 하소연 할 수 있는데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그분의 약속이 들리지 않으면 힘이 빠지고 낙심이 됩니다. 기도에 흥미를 잃게 되고 그 당위성도 찾지 못해 이내 중단하고 맙니다. 들리지 않아도 다가서는 용기만 있으면 친구가 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다가섬은 어떤 말보다 분명하고 어떤 말보다 선명한 전달력이 있습니다. 들리지 않아도 다가서면 귀가 열립니다. 하나님께 다가서면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오셔서 우리의 언어로 속삭이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다가오라는 하나님의 손짓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가서고 싶지만 들리지 않아서 머뭇거린다면 먼저 용기를 내어 다가서십시오. 그러면 친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들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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