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교회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려고 한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보통 기다림 없이 식사를 할 수 있었던 곳인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앞에 4팀 정도 있어 대기실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렸습니다. 마침 그 대기실에는 제빙기가 있어 직원들이 드나들며 각 얼음을 그릇에 담아 나르곤 했습니다. 아마도 주방이 좁아서 제빙기를 대기실에 놓고 사용하는가 싶었습니다. 어차피 대기하는 손님들에게도 냉커피를 마시려면 각 얼음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한 직원이 마음이 급했던지 얼음 하나를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떨어진 얼음을 그릇에 가득히 채운 얼음 위에 올려놓고는 주방으로 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발을 디딘 곳에 떨어진 얼음인데 말입니다. 깨끗이 물로 씻어 사용했는지, 아니면 다른 얼음과 섞어 그냥 사용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의 짜증난 표정으로 볼 때는 그냥 쓰지 않았을까 생각되었습니다. 자리가 나서 각 얼음이 담긴 물병으로 물을 마시는데 떨어진 얼음이 생각나서 쉽게 목뒤로 넘기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골 3:23)고 말씀했습니다. 모든 일에 정직으로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위기의 순간이나 이익이 눈앞에 있는 순간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위험이 앞에 있다’라고 생각하면 베드로처럼 거짓을 말하고 저주까지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은 위기 앞에 약하고 위험 앞에 간사한 존재입니다. 더군다나 보이는 이가 없는 중에 주님을 의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떨어진 얼음은 교회의 영적 권위입니다. 너무나 많은 것을 그릇에 담으려 욕심을 부리다 보니 가장 중요한 영적 권위를 떨어뜨리고 만 것입니다. 떨어진 각 얼음처럼 세속에 물든 권위를 줍는 것을 보지 않기를, 아니면 지금은 흉흉하니 못 본척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감추고 사는 우리입니다. 얼음을 떨어뜨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주어 담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 이 땅의 교회가 이 갈림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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