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있는 ‘육교陸橋, footbridge’도 많이 철거해서 보기 드물게 되었지만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지하도와 함께 횡단보도가 없는 도로나 철도를 건너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입체교차 형식의 시설물이었습니다. 교차로에서 가까운 초등학교 앞에는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육교는 많은 계단이 있어 오르내리기가 불편하고 도로가 자동차의 전유물이 아닌 보행자 중심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2000년대 이후로 육교를 되도록이면 설치하지 않거나 있는 육교를 철거하여 횡단보도로 대체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습니다.
전도법 중에 ‘다리(bridge)예화 전도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려운 신학적 이해가 아니더라도 쉽고 단순하게 전달할 수 있고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하면 보다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많이 사용했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육교의 한계가 있는 것처럼 다리예화도 그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하나님과 죄인된 사람과의 간격을 그 어떤 것으로도 건널 수 없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만 건널 수 있다는 명료한 설명에도 예수는 단순히 다리 역할만 할 뿐 우리가 본받고 닮아야 할 인격적 존재라는 것을 쉽게 간과하게 됩니다. 또한 진정한 회개 없이도 다리만 밟고 건너면 모든 일이 만사형통하는 것처럼 오해를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리(bridge)라는 가교역할에만 국한되기에 왕(그리스도, 메시아)이라는 그분의 정체성을 쉽게 간과하게 하는 어려움도 또한 있습니다. 쉬운 전도법이 중요한 핵심을 쉽게 간과하게 하는 허점을 노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신비를 너무 쉽게 전달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전에 ’지혜자와 어리석은 자‘를 대비하는 형식으로 복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우화식으로 원고를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많이 부족한 생각이 들어 스스로 폐기했지만 쉬우면서도 정확한 전도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생각해보니 쉬운 전도법이 아니라 정확한 전도법이 필요한 때입니다. 특히 이단들이 교리를 가지고 장난질 하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전해지는 중에, 전해진 복음을 사용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쉬운 복음이 아니라 바른 복음이 역사하기 쉽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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