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에게는 평소에 익숙한 장소가 일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나 치매를 앓는 경우 새로운 것을 기억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어서 낯선 곳을 익숙한 곳으로 만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살아온 세월에 비례해서 한 동네에서 머문 시간이 길면 주변 환경이나 주변 지리가 익숙해집니다. 저에게 지하철을 이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어서 더 이상 표지판을 보지 않고도 어디에 서는 것이 빈자리가 있을 가능성이 많은 지를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계단 내려가서 오른쪽, 마지막 계단에서 우측으로 50m정도 걸어가면 제가 늘 서는 곳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달랐습니다. 분명 계단을 내려가서 오른쪽으로 오는 지하철을 탔는데 20분쯤 흘렀을까 낯선 역명이 나왔습니다. 너무나 이상해서 보던 책을 덮고 지하철 노선도를 찾아보았습니다. 거꾸로 가고 있었습니다. 부랴부랴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른 지하철로 갈아타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지하철을 타는 과정을 반추해 보았습니다. 평소 이용하던 계단이 아니라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반대편으로 내려왔으면 타는 방향도 반대로 가야하는데 익숙한 방향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익숙함이 때로는 엉뚱한 방향과 길로 인도합니다. 예배의 익숙함도 그렇습니다. 뻔한 익숙함에 갇혀버린 예배는 형식주의와 냉담한 신앙 분위기 속에서 점차 그 생명력을 잃는 길로 인도합니다. 뻔한 기도가 우리를 영적으로 무디게 만들 듯이 말입니다. 오히려 세상의 변화무쌍함이 우리의 고루한 익숙함을 비웃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긴 사도행전을 보면 교회에 역동성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초 미국에서 있었던 대각성 운동(Great Awakening)을 보면 익숙함을 깨는 긴급한 역동성이 있었습니다. 긴장감 없는 성도, 식어버린 열정 그리고 사탄의 거짓 휴전에 넋 빠진 얼굴들. 지금은 익숙함의 대로를 떠나 어색하고 서먹한 좁은 길로 가야할 때가 아닐까 생각이 깊어지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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