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삶은 행동이 아니라 실체에 의해 지배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는 것, 그분의 돌보심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추상적이거나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의 실체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믿음의 실체를 붙잡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헬라 문화가 지배하던 시대에는 엄격한 교사나 후견인이 아이를 보호하고 안내하면서 집에서 학교로 데려다 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엄격하게 교육한다고 사람이 의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자유롭게 방치한다고 해서 의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엄격하게 보호하고 안내한다고 해서 마음까지 안내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으로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고, 본래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특권입니다.
보고 배운 것 없이 막된 남자라는 뜻으로 욕하여 이르는 말에 쌍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반이라는 신분이 좋아서 돈을 주고 사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배움이 갑자기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신분만 달라지는 것입니다. 신분이 실체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됨은 그와 다릅니다.
신분이 중요한 것은 약속의 담지자, 곧 유업을 주시리라는 약속의 수혜자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믿음이 우리에게 성령을 가져다 준다는 말을 성경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됨은 실체가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고, 우리와 함께하시는 그분의 임재를 의식하고 느끼고 경험합니다. 그분의 돌보심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그분의 사랑에 반응하게 하십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예배와 찬양입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때가 차서 마침내 하나님은 활동하시고, 역사를 시작하시고, 구원하시고,
그분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노예들은 자유롭게 되어 자녀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현재의 순간은 하나님이 구속하시고, 복 주시고
사랑하시는 충만한 때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허구나 허상 또는 상징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는 실체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주시는 성령이 실체입니다. 믿음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분리한다면 실체가 없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의 실체이신 성령에 사로잡힌 자의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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