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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신발
배정환 2024-04-06 추천 0 댓글 0 조회 98

비가 쭈럭쭈럭 내리던 어느 날, 양말이 젖는 느낌이 들어 길 한쪽으로 가서 신발을 벗어보니 발등과 발바닥에 물에 살짝 담갔다가 들어 올린 것처럼 물자국이 선명했습니다. 전에는 이런 경우 잘 말려서 비 내리지 않는 맑은 날에만 신고 다닐 마음으로 한쪽에 잘 보관했겠지만 그날은 달랐습니다. 이제는 이 신발을 보내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바닥과 옆구리에 물이 새는 신을 어떻게 재활용 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건조한 후에 재활용통에 넣었습니다. 통에 넣기 전에 신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많이 닳아 있었고 찢진 부분도 보였습니다. ‘험하게 신었구나’라는 생각보다 ‘대신 다쳐주었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아프리카 남수단을 처음 방문했던 2013년,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은 신을 신고 있지 않았습니다. 발굽이 갈라져 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였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다녔습니다. 얼마나 쓰리고 아팠을까? 발을 함부로 다룰 수밖에 없는 그들의 처지가 안타까웠습니다. 다음에 다시 남수단을 방문했을 때에는 신발을 잔뜩 가지고 가서 어른과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처음 신발이라는 것을 발에 신겨본 그들은 마냥 신기해하며 기뻐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들이 신발을 아끼느라 땅에 묻고 지붕에 올려두기도 했지만 결국 발이 커서 신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고 갑갑하고 불편해서 신발을 신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발의 생명은 편리함과 보호성입니다. 신발을 보다가 십자가가 생각났습니다. 십자가의 생명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에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불편함과 단련이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단련되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신발을 신을 수 없듯이 십자가도 질 수 없습니다. 불편함은 반드시 거쳐야 할 은혜입니다. 불편함을 통해 차원이 다른 편리함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딱 그렇습니다. 지고 가는 십자가는 낡아지지만 마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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