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 샤키야가 쓴 ‘지극히 사적인 네팔’에는 소(牛, cow) 이야기가 나옵니다. “힌두교에서 소는 신성한 존재입니다. 길을 가다 소를 보면 ‘엄마’라고 부르면서 인사를 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힌두교에서는 왜 그토록 소를 귀히 여길까요? 사람이 죽고 나면 소가 죽은 자를 천국으로 데려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소를 함부로 대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소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우유는 물론이고 소똥과 오줌까지 신성시하고 심지어 소의 모든 부위에 각각 다른 신들이 산다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부위에 따라 맛과 가격이 다르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부위마다 다른 신들이 거하고 있다는 것은 처음 듣습니다.
소를 향한 네팔인들의 신앙심은 대단해서 그야말로 소는 일평생 신으로 대접받으며 삽니다. 죽으면 화장을 하고 장례식까지 치러주고 소의 날을 만들어 특별히 보살피기도 합니다. 소와 관련된 네팔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우상숭배’가 허상과 무의미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과거 우리의 농촌에서는 소에게 쟁기질시키고 수레를 끌게 했습니다. 그뿐입니까? 한우를 좋아해서 부위별로 버릴 것이 없이 알뜰살뜰 육류로 애용했습니다. 네팔인들이 보면 모두 지옥에 떨어질 일이요, 화(禍)나 재앙이 가득할 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옴이 더딘 것을 참지 못하고 만든 것이 송아지였습니다. 아론은 백성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애굽기 32:4) 하였습니다.
왜 하필 송아지일까요? ‘고대 이집트에서는 특정한 외모의 소를 아피스(Apis)라고 부르며 창조신 프타의 현신으로 숭배했다. 살아있을 때는 파라오와 버금가는 대접을 하여 가장 좋은 곡식으로 여물을 해서 먹이고 가장 아름다운 암소들과 짝짓기를 시켜주다가, 죽으면 파라오와 마찬가지로 미라로 만들어 훌륭한 묘지에 묻어주었다’고 합니다((namu.wiki 인용). 이스라엘은 애굽에 있을 때는 애굽의 신을 섬겼고 가나안에 이르렀을 때는 가나안 신을 섬겼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우상의 유혹을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우상은 너무 다가가서 보면 커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너무나 보잘 것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요 긍휼이 가득한 지존의 하나님이시지만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두려운 공의의 심판자이십니다. 세상의 우상과 비교할 수 없는, 비교될 수 없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의지함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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