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욥기9:1-11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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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욥이 대답하여 이르되
2. 진실로 내가 이 일이 그런 줄을 알거니와 인생이 어찌 하나님 앞에 의로우랴
3.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4. 그는 마음이 지혜로우시고 힘이 강하시니 그를 거슬러 스스로 완악하게 행하고도 형통할 자가 누구이랴
5. 그가 진노하심으로 산을 무너뜨리시며 옮기실지라도 산이 깨닫지 못하며
6. 그가 땅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시니 그 기둥들이 흔들리도다
7. 그가 해를 명령하여 뜨지 못하게 하시며 별들을 가두시도다
8. 그가 홀로 하늘을 펴시며 바다 물결을 밟으시며
9. 북두성과 삼성과 묘성과 남방의 밀실을 만드셨으며
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11.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욥은 하나님의 행동을 보고 또 경험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 까닭은 하나님이 일어나게 하시기 때문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에게 부당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성품이 불의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욥의 마음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욥의 지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욥의 친구인 빌닷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정의를 굽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절대로 순전한 사람을 버리거나 악한 자에게 복 주지 않으신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욥은 동의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고난과 아픔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면 그분은 분명 불의한 성품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이 어떻게 정당화 될 수 있거나 하나님에 의해 공적으로 정당성을 입증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 사랑과 긍휼, 그분의 신실함과 약속의 진정성을 다 믿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따로 놀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자꾸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키기 때문입니다. 억울함과 속상함, 상처와 고통이 자꾸 우리의 마음을 격동시킵니다. 그러면 마음은 아는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과 따로 갑니다. 욥이 볼 때 하나님은 우주의 도덕적 질서를 유지하기는커녕 실제로 도덕적 지진을 일으켜 무질서를 대신하게 하시는 분에 불과합니다. 욥 자신의 삶에 일어난 일이 바로 이것이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말입니다. 욥에게는 하나님이 문제를 일으키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이런 문제에 직면합니다. 지금이 바로 그럴 때인지 모릅니다.
억울하고 억울해서 마음이 아픈데 이런 사정도 모르고 더 고통스럽게 하시는 하나님은 과연 신실하신 분일까요?
하나님의 행동에는 2가지가 있습니다.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고 기억하면 훨씬 더 신앙의 고민을 정리하기에 유익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하시는 어떤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어떤 행동은 악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더 긴 계획의 실행입니다. 이러한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을 계시하지 않습니다.
지금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 앞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성품과 계획이 분리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고 하나님을 전혀 다른 분으로 결론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계획의 진행 속에 보이십니다. 우리는 사실의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구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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