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갈라디아서1:6-12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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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1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예수를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고 나면 우리는 독립적인 노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신앙의 성장 과정 중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나중에는 점점 중심을 잃어버리고, 복음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폐합니다. 그 결과 신앙의 성장은 멈추어 버립니다.
갈라디아서 교인들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은혜’ 가운데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한 ‘행위’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에서 거짓 선동자들이 말하는 행위란 할례나 절기준수와 같은 ‘육체적’ 가치들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경건의 능력은 없고 모양만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로 규정됩니다. 우리의 구원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부르심은 그에 합당한 응답을 요구한다. 합당한 삶은 한 마디로 거룩함입니다. 구원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속에 진리를 믿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이로인해 구원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이 있습니다.
갈라디아 성도들은 할례나 절기 준수와 같은 계명들에 집착했습니다. 대신 오히려 더 중요한 믿음과 성령의 삶을 팽개쳤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행위란 전자입니다. 성령의 유일한 통로인 믿음을 저버리고, 성령과 무관한 율법의 행위들에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그들에게 거부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는 목숨보다 소중하다며 굳이 교회에서 모여 대면예배, 현장예배를 고집하면서도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는 얼마나 소중하게 여깁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라는 주님의 애통을 과연 얼마나 귀담아 듣고 삽니까? 애통이 없이는 신앙이 성장하면서 동시에 은혜 안에 머물지 못합니다. 성장할수록 자기 열심, 자기 공로라는 곁길로 빠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순수 복음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진리를 믿도록 이끄시는 성령과 무관한 신앙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아니기에 진멸할 수 밖에 부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복음을 외치는 선동가들은 바울을 향해 자기 세력을 키우려고 할례와 율법이라는 장애물을 게거한 반쪽짜리 복음을 전한다고 비난했습니다. 선동가들은 할례는 십자가로 인한 고난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고 외쳤습니다. 그런 점에서 할례의 복음이 오히려 믿기 쉬운 복음이었습니다. 할례받을 동안 잠시 고통을 참으면 되고 율법은 절기때만 기억하여 신실한 척 하면 됩니다. 나머지 날들은 내 자유껏 살면 됩니다.
오늘 제목처럼 복음에 삶의 중심을 맞추십시오. 나의 삶에, 나의 욕심에 복음을 맞추고 조정하는 모든 것은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으로 하나님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주님의 복음에 내가 설득을 당하십시오. 그것이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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