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칭찬은 꾸중보다 못합니다. 칭찬은 그 대상을 애정으로 관찰하고 사랑으로 이해할 때 가능합니다.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즉흥적인 칭찬은 오히려 인격에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칭찬이 아부가 되고, 아부가 독이 되는 경우는 많습니다. 마음에 없는 칭찬은 듣는 자나 하는 자 모두에게 역겨움 그 자체입니다. 세상이 삭막한 것은 칭찬이 없어서가 아니라 칭찬을 할 수 없을 만큼 무관심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삭막함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마른 땅은 거친 호흡으로 갈라지듯이 눈물이 마른 우리의 마음은 긍휼의 결핍으로 찢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지으실 때 순환의 원리를 그 안에 두셨습니다. 물은 흐르고 흘러 바다로 모입니다. 모인 물은 나중에 수증기가 되어 구름이 되고 구름이 무거워지면 다시 비로 내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에는 피가 흐릅니다. 피가 고여 있거나 흐름이 막히게 되면 생명을 잃게 됩니다. 사람의 생명도 순환의 원리 속에 지속되도록 지으셨습니다. 산소순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산소 호흡하는 생물체에 흡수된 산소는 이산화탄소의 형태로 대기 중에 방출되어 탄소와 결합하고, 이산화탄소는 탄소순환이나 광합성을 위해서 식물체에 흡입됩니다. 광합성에 의해 화학적으로 물이 분해됨에 따라 산소가 다시 생성되어 대기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순환의 원리는 비단 자연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사람의 관계도 생태계처럼 순환구조입니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이미 그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순환시스템은 누구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로만 보아도 이 사실이 분명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인해 우리도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 받는 위로는 한 곳에 고이지 않고 같은 혹은 비슷한 어려움이나 환난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죄는 이러한 흐름을 막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사해의 탐욕을 결코 중단하지 않습니다. 마치 스스로 멈출 줄 모르는 암세포처럼 멸망의 끝으로 달려갑니다. 하나님의 뜻은 소유가 아니라 순환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가 아름다운 것은 사랑의 순환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픔의 나눔이 더 큰 아픔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보다 더 큰 위로가 그 속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위로는 순환을 과정을 거쳐 더 큰 위로가 됩니다.
자신의 아픔을 공동체 안에서 나누기를 꺼려하는 지체들이 있습니다. 위로를 기대했지만 더 큰 아픔과 쓰라림으로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실제로 그런 경험을 가진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감추고 숨기는 것은 더 영적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밖에 미세먼지가 있다고 창문을 열지 않으면 더 나쁜 실내공기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아픔과 환난을 이겨내는데 과정 중에는 상처가 아문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공동체도 이와 같이 상처가 아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같이 아파할 때 더 빨리 아무는 순환의 원리를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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