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지 못할 약속이지만 곤란한 상황을 면피하기 위해 덥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당장은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서 좋지만 지키고자 한 약속이 아니라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칫 거짓말쟁이라는 오명이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 다닐 수 있으니 말입니다. 지난 어린이날 아직 초등학생이라 부모로서 막내를 챙기는 마음도 있지만 본인 또한 어린이로서 당당하게 그날 무엇을 해줄 것인지를 밝히라는 녀석의 요구에 급한 대로 몇 가지를 제시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어린 자녀를 챙겨주는 아버지가 되었지만 5월 초 약속을 지키느라 우리 부부는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약속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했지만 하나하나 지켜나갈 때는 버거워진 몸이 가지 않으려 꾀를 부렸습니다. 오랜 시간 걸음으로 종아리는 부었고, 발뒤꿈치는 아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좀처럼 지칠 줄 모르는 아들이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 아버지를 마음속에 그려보았습니다. 그분은 많은 약속을 스스로 먼저 하시고 그것을 성실하게 지키신 분이시며, 약속 앞에서 자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거룩한 낭비를 서슴없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마도 막을 수 없습니다. 침입한 강도가 예리한 칼을 휘둘러 많은 피를 흘렸을 때에도 약속대로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강도가 집안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것이 약속이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죽음의 문턱에서 생사(生死)의 주인은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이셨습니다. 약속을 통해 새롭게 하나님을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예’라는 말은 긍정의 상징입니다. 북한산에서 군인으로 복무할 때 일입니다. 명령을 좋아하는 상관(上官)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에 토를 달거나 ‘아니오’라는 부정적 말이 나오면 그 순간 그의 말은 명령이 되었습니다. 농담을 하다가도, 공적인 업무와 관련 된 것이 아니어도 명령을 남발했습니다. 명령 앞에 아니오는 있을 수 없었기에 언제나 ‘예’만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 명령이 아닌 약속 앞에서 오직 예만 있었습니다. 명령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으로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사랑은 명령보다 강하고 약속은 명령보다 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 예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의 완성입니다. 모든 약속은 예수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가 그분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예가 되어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그분을 떠나서는 어떤 인생의 열매도 거둘 수 없습니다. 우렁찬 함성은 아니어도 군인처럼 절도 있는 말투는 아니어도 주님의 “예”는 생명을 던지는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소리만 요란한 약속이 남발되는 세상에서 작은 약속 하나에도 영혼을 담았던 예수님의 생애는 빛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신 후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약속의 영입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자녀인 우리들도 신실하도록 성령으로 인치셨습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습니다. 성령님은 약속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꾸셨습니다. 약속 앞에 신실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한 우리의 태도를 책망하시고 생명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자들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안에서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약속에 살고, 약속에 죽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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