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도행전3:11-16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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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12.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13.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14.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힘들 때 ‘내가 죽으면 엄마가 죽지’라는 생각에 끔찍한 생각을 막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나 하나 죽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겠는데 자신을 사랑하는 엄마까지 죽어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뜩 차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서 예수님을 지칭할 때 ‘생명의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다른 성경에서 각각 ‘생명의 주관자’, ‘생명의 근원’ 혹은 ‘생명의 창시자’ 등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습니다. 그런 그분을 사람들은 죽였습니다. 이는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행위였으며, 영생의 길을 스스로 차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생명나무에 접근할 길이 차단된 인간이 더 무섭고 어리석은 행위를 저지른 것입니다.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생명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유지되고 지속됩니다. 디도서에서 바울은 “우리는 그 은총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고 상속자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바랄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뗄 수 없는 분이십니다. 창조부터 영원한 생명까지 우리는 그분과 더불어 존재하며, 더불어 생명을 누립니다. 그분과의 끊어짐은 생명의 끊어짐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신 것은 예수 안에서 우리를 살리신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귀한 생명을 회복시켜 주셨건만 생명을 경시하는 세상을 바라보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내 안에 주님의 생명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다면 남의 생명도 귀한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귀천과 외모와 상관없이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생명의 주님 되신 예수님의 이름은 오늘도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시는 일에 쉬지 않으심을 드러내는 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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