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본문] 사도행전4:1-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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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2.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3.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연일 한 육군대장 부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남의 집 귀한 아들을 군대에 보냈더니 공관병이라는 이유로 노예처럼 부렸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그 육군대장은 어느 주일 오후에 설교를 했습니다. 요지는 ‘민족 복음화의 모든 열쇠는 군 복음화에 있다’였습니다. 그런 그가 복음은 제대로 알았을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은 군림하고 갑질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낮아져서 죄인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피 흘림의 사랑으로 구원하신 예수님을 알리는 복된 소식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귀하신 독생자 아들을 죽음 가운데 두지 아니하시고 부활케 하심으로 인간의 탐욕과 거짓된 평화 그리고 악함으로 인한 죽음의 노예로 둘 수 없음을 그의 능력으로 증명하셨습니다.
사두개인은 귀족출신의 종교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은 늘 로마정부와 가까이 지내며 종교적 이득을 챙겼습니다. 대신에 정치적 소요나 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람들의 종교심을 적절히 사용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유대인이나 바리새인들과 달리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정규과정의 신학공부를 하지 않은 갈릴리출신 어부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참을 수 있었지만 그들이 이단시하는 부활을 전하는 것은 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모세오경만이 정경이었습니다. 모세오경에 부활이 없기 때문에 믿으려 하지 않았고 유대인의 부활관념도 마카비혁명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19에서 아브라함의 부활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유하자면,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되받은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이라는 글자가 없다는 이유로 부활의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창조 이래 최대의 표적 앞에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바뀌기보다는 권력의 힘으로 누르고 제압하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바램과 달리 믿음의 사람들은 더 늘어나기만 했습니다. 믿음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은사입니다(고전 12:9). 다른 하나는 훈련입니다. 믿음의 훈련을 통해 믿음이 자랍니다(살후 1:3). 부활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믿음이 없이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잘못된 믿음에서 돌이켜 바른 믿음으로 서는 것이 은혜입니다. 반대로 바른 진리 위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 또한 은혜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엇이 놓여있는가를 바라보십시오. 그 가로막힘을 내려놓는 것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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