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어린이날, 아직 초딩을 벗어나지 못한 막내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에 갔었습니다. 입구에서 얼마를 지나지 않아 유니폼을 입은 한 젊은이와 청년의 아버지뻘 되는 중년의 남성과 고성을 주고받으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면서 귀동냥으로 사연을 들어보니 중년의 남성이 신고 없이 무단으로 좌판을 벌여놓고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알바생으로 공원 내 잡상인을 단속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청년으로부터 공원 밖으로 나가줄 것을 요구받자 화를 내며 다투었던 것입니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중년남성의 반격은 “너 알바생이지, 정직원 아니지. 알바생 주제에”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말은 알바생들이 뽑은 마음에 상처를 주는 최악의 말들 중 단연 1위입니다.
약한 자 앞에서 강한 척하고 강한 자 앞에서 약한 척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믿음의 영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다, 신앙생활을 좀 했다 하는 분들’이 예배와 섬김에서 예외의식을 갖는 것은 그렇지 못한 자들 앞에서 자신의 강함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경륜이 깊어질수록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신앙이 아직 여린 영혼을 돌보는 일에 열정이 있고 겸손하게 주님 앞에서 서는 모습이 묻어나면 좋으련만 일부나마 실상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믿음이 강하다’에서 ‘강함’은 ‘풍부함, 영향력’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총알도 뚫지 못하는 방탄복은 케블라섬유로 만들어집니다. 탄성력이 뛰어난 이 섬유를 수십 겹으로 짜서 만들면 총알이 그물에 걸린 것처럼 뚫지 못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품을 수 있기 때문에 강한 것이고, 강한 영향력이 부드럽게 전달되기에 힘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언제나 ‘나’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습니다. 그 영향력이 나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믿음의 속성은 나에서 너로, 너에서 우리로 넓혀갑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우리 자신을 기쁘게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그에게 유익을 주어 주님 안에서 성장하게 도와줍시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덕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덕이란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특별한 선(善)으로 다른 사람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너의 기쁨과 성장이 곧 나의 기쁨이요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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