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파看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드러나지 않은 일이나 숨겨진 마음 따위를 눈치나 짐작으로 앎’입니다. 영어 표현으로는 ‘penetration, seeing through’입니다. 그중에서 관심을 끄는 단어는 ‘penetration’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침투’혹은 그러한 능력을 의미하는 말로 흔히 사용됩니다. 존 스토트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비기독교적 세상과 비그리스도인들 공동체에 침투해 들어가야 합니다. 빛을 두는 목적은 집안을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소금의 목적의 고기에 뿌려져 부패되는 것을 저지하거나 늦추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등잔을 말 아래 감추어 두거나 소금을 창고에 처박아 두기만 한다면 쓸모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상하고 작은 교회라는 창고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비기독교적인 사회에 침투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중략..이 두 비유의 핵심은 예수님이 우리를 보내신 공동체에 침투해 들어가지 않으면, 우리는 소금으로 빛으로서 세상에서 아무런 책임도 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의 경우에서 사도 바울은 간파를 언급합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용서할 것을 권면한 그는 계속해서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셈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함으로 사탄의 속셈이 어디에 있는가 이미 간파했음을 시사했습니다.
현대 전쟁은 버튼 전쟁이라 불릴 만큼 누가 더 강한 미사일을 빠르고 정확하게 쏠 수 있는가에 승패가 달려있습니다. 이를 위한 전략과 전술은 어느 때보다 치열한 상황입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침투’해서 적의 계략과 책략을 간파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달려있습니다. 많은 경우 영적 무지에서 오는 패배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습니다. 간파의 능력은 어느 전쟁보다 영적 전쟁에서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적의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려는 노력은 비단 우리만 아닙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에 이르기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을 교란시키고 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영적 예민함과 긴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영락없이 당하고 맙니다.
사탄과 죄의 침투를 막기 위한 교회의 치리는 오히려 오늘날 더 요구됩니다. 다만 그 뒤에는 용서와 사랑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작은 치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은 용서와 사랑이 너무 앞서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책략과 계략 때문입니다. 분명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책략이 이미 깊숙이 공동체에 침투하여 정당한 치리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뻔히 보이는 사탄의 속셈에 교회와 성도가 넘어가는 것은 탐욕적인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썩은 부위의 도려냄이 없이는 남은 부분의 건강함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나 자신에게 유익이 있다하더라도 잘못된 과정에서 오는 교회 공동체의 불행은 막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공동체의 치리에 자신을 맡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직장은 침투의 좋은 거점임과 동시에 적의 침투가 항시 존재는 위험지역이기도 합니다. 사탄의 책략을 간파하고 깊숙이 침투하여 거짓과 어둠을 걷어내는 주님의 용사로서 날마다 깨어있기를 소망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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