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낙심 중에도 버릴 수 없는 것이 소망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갖는 기대와는 달리 소망은 죽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삶에 대한 미련입니다. 후회와 아쉬움으로 범벅된 삶이기에 그냥 삶을 마감할 수 없기에 몸부림으로 소망을 붙잡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주먹을 쥐고 한 호흡을 부여잡기도 하지만 얼마나 부질없는지 그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러한 소망이 없습니다. 소망은 사람 밖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릅니다.
인내심과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심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기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소망을 버리지 못하는 자들을 절망 속에서 건져내셔서 기대할 수밖에 없는 참 소망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분이 곧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산 소망이십니다. 같은 소망 안에서 우리는 예수를 본받아 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언어가 달라 흩어진 인간은 끊임없이 서로를 대적하며 살육하고 빼앗고 빼앗기는 역사 속에 예수님은 친히 오셨습니다. 끊임없는 신뢰보다는 배신과 배반으로 인해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세상에서 제자의 배신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실패요 소망의 끊어짐이었으나 사탄도 미처 알지 못한 하나님의 지혜인 부활을 통해 산 소망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안에서 부름 받은 모든 자들이 그리스도를 본받아 같은 소망, 같은 생각으로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카핑 베토벤’이라는 영화에서 베토벤은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합창단을 무대 위에 두고 사람과 악기가 하나 되도록 곡을 지휘합니다. 고정관념에 빠진 자들은 악기와 사람의 합창은 함께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베토벤은 자신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멋들어지게 자신이 옳았음을 아름다운 하모니로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이는 하나 됨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아봅니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아름다운 화음을 내는 일은 다름보다는 같음을 먼저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구별만 있고 같음이 없는 것은 거룩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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