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작고 사소한 일처럼 보이는 것도 다 자격증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설마 이런 일에도 자격증이 필요할까 싶었던 것이 강아지 미용이었습니다. 여름철 되면 털 날리지 않도록 빗어주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애견미용학원에 다니며 열심히 준비해야 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놀랬습니다. 집 주변에 위치한 대학 교내를 거닐다 ‘소음진동기술사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보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기술사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자격증은 늘었지만 자격증에 담을 수 없는 인격은 늘 문젯거리입니다. 자격이 없는 자에게 자격증은 치명적인 흉기가 됩니다. 운전면허증이 있어 도로에 차를 끌고 나오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교통법규를 준수하지 않고 자신은 물론 타인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운전자들이 있습니다. 정말 그런 자는 자격이하입니다. 최소한의 윤리도 저버리고 보복운전을 하거나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것은 면허증을 들고 다닐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자격증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최소한 능력과 실력뿐입니다. 인격과 윤리의 수준은 담을 수 없습니다. 상식적인 윤리의식과 인격을 요구하는 목사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닙니다. 소정의 과정을 마쳤고 시험을 통과했기에 목사가 되었고 이에 걸맞은 임직패도 주어지지만 그것으로 인격이 높아졌거나 나아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목사라는 거룩한 직분에 숨어 비윤리적이고 반이성적인 행동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자격은 하나님에게서 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진정한 자격의 출처가 하나님에게 있음을 밝혔습니다. 이는 얼마나 높은 점수로 혹은 얼마나 빨리 과정을 통과했느냐 와는 상관없습니다. 자랑할 일도 아니며 주눅들 일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빠르고 늦고의 차이일 뿐입니다. 주님의 부르심 안에서 이러한 시간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어쩌면 문제는 다른 것에 있습니다. 화려한 스펙과 사회적 경륜에 기대어 목회를 하려는 분들도 주변에서 듣습니다.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신학공부를 마치고 목회에 뛰어든 분들도 있는데 그중 어떤 이들은 목회를 또 하나의 명예 정도로 여깁니다. 물론 헌신적으로 자신의 안락함을 버리고 상처받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이들이 더 많습니다.
이로써 분명해집니다. 화려한 스펙이나 성공한 사회적 경험이 하나님의 일꾼의 자격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일한 자격의 근거는 우리에게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 자리에 세우셨고 사역을 맡겨주신 것입니다. 스펙의 화려함과 초라함이라는 이분법에 갇혀 스스로를 판단하거나 비교한다면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는 행위입니다. 선교지에서 만나는 선교사에게는 항상 눈물이 있습니다. 영혼을 향한 안타까움에서 나오는 탄식과 변하지 않는 그들 때문에 실망이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격은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우리를 향한 그분의 인내와 오래 참으심 그리고 기다림의 결과입니다. 수 없이 많은 날들을 방황하고 셀 수 없는 날들을 믿음 없이 의심하며 보냈지만 항상 그 자리에 신실하심으로 거하시는 주님, 그분께서 우리에게 일꾼의 자격을 주셨습니다. 꾼은 전문가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전문가로 오늘도 다듬어지고 있기에 더운 여름도 막을 수 없는 감사가 땀과 함께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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