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일입니다. 사람들이 많아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평소처럼 서서 갈 마음으로 전자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내릴 역이 가까워진 때에 마침 빈자리가 났습니다. 앞에 있던 분이 핸드폰을 열심히 보다가 급하게 내렸기 때문입니다. 곧 내릴 것이지만 가방을 메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 서서 지친 다리에게 쉼을 줄 심산으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니 서서 읽을 때와 달리 졸음이 살며시 다가왔습니다. 읽은 부분을 몇 차례 읽어야 이해가 되기를 반복했습니다. 책과 졸음 사이를 오가며 이해의 줄을 밀고 끄는 중에 안내 방송이 나왔습니다. 아뿔싸 이미 내릴 역을 지나치고 말았입니다. 부랴부랴 짐을 추려서 문이 닫히기 전에 내렸습니다. 계단을 올라 반대편으로 가서 오는 지하철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의자가 주는 편리함이 달콤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잊게 했습니다. 그러나 서서 가는 고통은 쓰지만 어디로 가는지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 몸이 기억하게 했습니다. 어떤 삶이든 삶에는 대가 지불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경제학에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공짜는 없다.' 공짜라고 말하지만 이미 혹은 앞으로 지불된 혹은 지불될 값이 포함된 것입니다. 편리함이 주는 삶이 당장은 달콤해 보여도 게으름이 친구하자고 금방 손을 내밀고 이는 영적 나태함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고통의 삶을 택하는 것이 지혜가 되기도 합니다. 스스로를 자해하거나 자학하는 것이 아니라면 블편함이 주는 삶의 유익과 지혜가 분명 있습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라는 말이 있어도 집을 떠나는 것은 고생과 불편함이 주는 선물이 작지 않기 때문입니다. 단기선교 중에 만나는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습니다. 준비하는 힘든 과정보다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기 때문에 선교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되고 맙니다.
잠시 앉을 자리를 탐하느라 목적지를 잃는 삶에서 주님이 예비해 두신 영원한 처소를 바라며 영혼의 잠을 깨우는 삶으로 나아가는 순례의 누림이 있기를 바라는 겨울의 어느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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