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 씽크대에 달려있는 수전에서 톰방톰방 물이 떨어져 수선공에게 부탁해서 수리를 했습니다. 첫날 왔을 때는 간단하게 고무 패킹을 바꾸는 정도로는 어렵고 수전 전체를 바꾸어야 하는데 부품이 없으니 구해서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연락이 없어서 먼저 연락을 하니 그제서야 새로운 수전을 구해서 왔습니다. 씽크대에 가려 수전을 교체하는 작업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1시간 남짓 지나서야 겨우 수전을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수리를 마친 수선공은 고장난 수전과 종이 박스는 본인이 가져가겠다고 말하며 주섬주섬 들고 나갔습니다. 작은 일이지만 뒷수습까지 해주니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집 앞 골목을 지나치는데 남의 집 앞에 있는 전봇대에 얼른 보기에도 익숙한 낡은 수전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제 친절하게 들고 나간 수리공이 겨우 남의 집 앞에 버리고 간 것입니다. 앞에서는 친절한 척했지만 50m도 지나지 않아 양심을 버리고 만 것입니다. 제가 버린 것은 아니지만 제가 버린 것보다 더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얼른 주워 담아 집에 돌아와 분리수거 비닐에 담았습니다. 거기다 버릴거면 차라리 들고 나가지나 말지 사람을 이렇게 난처하게 만드나 싶었습니다.
겉시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겉으로만 하는 체하는 짓’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23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마음을 다해 하십시오.”라고 말씀했습니다(우리말성경). 사람에게 하듯 한다는 말이 겉시늉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좇는 신앙이 겉시늉이고, 외식으로 가득한 바리새인의 신앙이 겉시늉입니다. 사람의 시선 앞에 체면을 생각하면서도 하나님의 시선은 의식하지 않는 것이 겉시늉 신앙입니다. 시늉이 아니라 닮음이 있는 신앙을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온전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엡 4:13, 쉬운)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을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행하는 일이 때로는 손해가 되고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묵묵히 살아내는 하늘 바보가 되기를 소망하는 겨울의 어느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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