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살았던 서울 서대문은 아직 재래식 화장실이었습니다. 냄새도 지독하고 칙칙하고 어둡던 곳이었습니다. 그런 화장실을 사용한 경험이 있는데도 선교지에 가면 여전히 어려운 곳이 화장실입니다. 1999년에 중국 남경에서 보았던 화장실은 지금까지 생생합니다. 칸막이도 없어 훤히 다 보이는 곳에서 쪼그려 앉아 일을 보는 광경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급해서 뛰어 들어갔다가 놀래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경험한 것에 비하면 작은 일이었습니다. 마을을 방문한 중에 급하게 화장실을 찾았더니 널리 곳이 화장실이니 편한 곳에서 일을 보라는 말에 경악했던 경험에 비하면 훨씬 나은 편이었음을 그때 비로소 알았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고상하게 꾸미고 화려한 옷을 입었다 해도 화장실 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전에 선교 준비를 위해 목사님들과 함께 찾아간 카페는 실내 장식을 고급스럽게 한 곳이었습니다. 조명과 장식 그리고 구조까지 정성을 들인 티가 금방 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화장실은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좁고 어둡고 지저분했습니다. 화장실의 격이 장소의 격이고 더 나아가 사람의 격입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 어떠한지가 격을 나타냅니다. 사람의 격도 그렇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외모가 아니라 마음이 어떠한가가 그 사람의 격입니다. 마음이 구리고 천박할 때 그 사람의 격 또한 그렇습니다.
지난번 몽골 단기선교에서 가장 쓴 부분 중 하나가 화장실이었습니다. 숙소를 선정할 때 저렴하면서도 온수가 잘 나오고 화장실이 깨끗한 수세식인 곳을 찾았습니다. 감사하게도 몽골 현지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께서 손수 일일이 방문하여 우리 형편에 맞는 최적의 장소를 찾아주셨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가장 편안해야 하는 곳입니다. 불교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 곧 ‘근심이 풀어지는 곳’이라 이름한다지요. 더 나아가 화장실은 간사한 인간의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곳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간사함을 적나라하게 보이는 곳이 화장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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