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습니다. 필요에 의해 발명된 도구라도 필요가 사라지면 그 도구는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유물이 되고 맙니다. 필요는 늘 새로운 필요를 요구하고 찾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도구는 늘 새로운 도구에 의해 도태되고 맙니다. 그 주기도 점점 빨라지고 있습니다. 눈만 뜨면 새로운 것으로 가득합니다. 유물이 되어 버린 도구들은 어디에 보관하기조차 버거운 세상입니다. 보관보다는 버림이 익숙한 삶입니다. 이런 소비적 삶이 영적으로도 영향을 주어서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까지도 아까워하는 마음 없이 쉽게 버리는 것을 봅니다.
은혜의 방편으로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기도가 바로 그렇습니다.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말씀의 가치를 모르고 그 필요성도 깨닫지 못하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부 목회자들 사이에선 개인 묵상을 위해 성경을 읽지 말라고 가르치는 분도 있습니다.
잘못된 해석과 그릇된 적용으로 신앙에 좋지 못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염려 하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성령의 역사를 너무나 제한하고 말씀을 향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간섭을 과소평가했다는 느낌입니다. 말씀 없는 기도로 인해 내 뜻에 머무는 기도가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의 묵상과 기도가 병행되어야 하나님의 약속과 뜻을 붙잡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인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자체가 은혜에서 멀어진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말씀에 대한 목마름이 있고 기도를 향한 간절함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말씀을 사모하지 않아도 평안함으로 살아갈 수 있음이 분명 은혜이지만 문제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 그리고 탐욕과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그러한 삶에 만족과 기쁨이 있을리 만무합니다. 기도와 말씀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때 이미 그 신앙과 믿음이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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